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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채공간</title>
<link>http://www.ichae1982.com/tts/index.php</link>
<description>다름을받아들이는세상을꿈꿉니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at, 04 Feb 2012 15:46:1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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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불건전방담</title>
<link>http://www.ichae1982.com/tts/index.php?pl=2769</link>
<description><![CDATA[ .<br />
55년만의 한파라더니 굉장하다. 가죽장갑을 꼈는데도 맨살인 것만 같이 찬 바람이 아리고, 정말 맨손이면 손이 그대로 얼어 부서질 것같다. <br />
나는 추운 게 정말정말정말, 싫다. 머리속이 통째로 휘발되는 것같고 세상 모든 것이 적대적이 되는 기분이다. 도무지 추위를 감내할 수 없는 체질을타고난 주제에 인간이라는 죄로 이 겨울에도 꼬박꼬박 출근을 해내고 있다. 백명이 넘는 직원들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출근한 걸 보고 나는 여기가 헬-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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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나면 봄이 온다 했다. 아무리 매서운 바람이 불고 서릿발같은 추위가 밀려와도 그것은 이미 지나간 겨울이라고. 자연의 절기라는 게 그렇다고. 그러니까 그 봄이, 정말 왔다 말이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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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생각해보니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어. 국민학교 때 체육시간이면 창작 무용 같은 걸 했거든. 조를 짜서 안무를 해오고(딱 어린이스러운 안무랄까 막 원을 만들었다 손을 요래요래 했다가 브이자 대형으로 마무리, 소녀시대네 소녀시대) 발표하는 그런 거였는데 나는 그게 너무너무 좋았다. <br />
하다못해 운동회면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부채춤, 매스게임 이런 거도 좋아했네. 땡볕에서 자글자글 구워지다 픽픽 쓰러지는 와중에도 내심 기다리고 그랬다. <br />
오늘 라디오에서 wham의 <윀미업 비포유고고>를 듣고 떠오른 추억들. 친구들 집을 오가며 좁은 방에서 고물고물 연습했던 거 기억나네. 종이로 장미꽃 만들어 흰 장갑 끼고 그걸 들고 추기도 했었지. 고개를 까딱까딱 발을 까딱까딱. 남자애들과 손 잡는 동작이라도 넣을라치면 얼굴이 발개지고 수줍었는데. 애들도 진차 순진한 게 지금같으면 그게 뭐라고 싶지만 그때는 안무를 우리끼리 짜넣으면서 막 고민고민을 하는 거야. 아 별수없네 여기선 손 잡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난감한 표정들을 하고서 그게 무슨 대단한 결정이라고, 그랬다니까.  <br />
근데 wham을 한글로 어떻게 써. 횀,인데 이런 글자가 한글에도 있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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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추는 춤이고 매번 좋다고 해도 조금씩 다르거든, 몸이. 어제는 특히나 온몸에 힘이 안들어가는 것이 좋더라. 아무 생각없이 돌면 돌리는 대로 당기면 당기는 대로 밀면 미는 대로, 음악에 혼곤하게 취해 움직이는 게 팔랑팔랑 저대로 나부끼는 꽃잎이 된 기분이기도 하고. 이 세상에 잠깐동안 내가 아닌 상태로 머물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매력적이다. 아마도 그래서 마약을 하고 엑스터시를 하는 거겠지. 난 이해간다. 그게 죄라고도 생각안하고. 연기를 하는 배우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A인데 B라고 생각하고 눈물 흘리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야? 다른 존재가 되는 거잖아. 무당에게 신이 드는 것처럼. 한 사람에게 생이 열 개고 스무 개고 존재하는 거잖아. 그리고 그것을 반드시 내보내야 하고. 이거 안대단해? 그러니 보통 사람은 못하는 게 당연하고 그런 존재들이 또 어떻게 보통 사람들처럼 살 수 있겠어. 나는 그래서 배우들을 두고 "얼굴에 분칠한 것들과는 상종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그런 의미에서 "이해한다". 다른 존재들이라니까, 차원부터. 그러니까 일반인의 말과 행동으로는 가닿을 수가 없는 거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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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나는 지난밤도 좋았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는 그러는거다. 이 좋은 걸 모르고 살았다면 어땠을까, 잘 상상이 안돼. 내가 살사를 추기 이전에는 도대체 이 아름다운 그묘일 밤을 어찌 보냈나 희미할 지경이라니. 애인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라는 가정에는 그냥저냥 행복하게 살았겠지-라고 담담하게 답하면서 춤을 추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가정에는 진지하게 인상을 찌푸려가며 생각에 잠긴다. 그래도 그냥저냥 행복하게 살았겠지. 사는 건 이러나 저러나 다 비슷하니까. 어쨌거나 애인을 만나 좀더 내가 되고 그와 나이테를 쌓으며 좀더 성숙하고 행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춤을 만나서도 그랬던 것만은 분명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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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해 무언가 새로운 취미를 만들고 싶은 분이 있다면 소셜댄스를 권해드려요. 마약이나 엑스터시는 돈도 많이 들고 죄라고 눈에 불 켜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모로 번거롭지만 춤은 많이 춘다고 경찰 출동하는 거도 아니고, 뒤풀이다 발표회다 하면 돈이야 좀 나가지만 마약값에 비하면 푼돈아닌가. 사람들도 만나고 몸도 건강해지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귀찮으면 나처럼 혼자 춤추러 다니면 되고. 아 얼마나 좋은가. <br />
마약사범 같은 걸 잡아들이기 전에 사람들이 좀 즐겁게 살도록 다양한 문화 혜택을 제공하고 그러면 더 건전한 사회가 될텐데. 아니 건전사회라니, 수구우파들이나 하는 표현을 입에 담아버렸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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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불건전한" 게 제일 좋은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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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슴이 터지도록 비키니를 입고 응원을 하든 쪼그라들도록 응원을 하든 상관안한다. 하고싶은 대로 하는 거지. 자기 가슴 가지고 무얼하든 도대체 무슨 상관이야. <br />
문제는 그걸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선이다. 너희님들이 정말로 연대의 목소리로 이걸 이해했다면 말이야, 코피가 난다거나 성욕감퇴제 운운하는 말은 입밖에도 못냈을 거다. 너희님들은 너희님들을 지지하는 청취자들이어도 "여성"이라면 그렇게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거야.  <br />
하긴 너희야 원래 그랬지 그래서 나꼼수가 그 난리를 칠 때도 나는 한 점의 기대도 없었으요. 슬쩍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청취자와 너희님들 사이에는 위계가 없으니 성희롱 아니라는 되도안한 말 따위는 부끄러워서 하면 안되는 말인거야. 어줍잖게 비키니 여성(을 옹호하는 여자들, 지들 표현대로라면 개념녀?) 대 여성주의자들 구도로 만들지 마라 말이야. 여성주의자들은 너희님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다. <br />
<br />
그런가하면 한편으로는 비키니 응원을 한 여성을 향한 질타도 많은가보다. 트위터 상에서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잡년행진 멘션통에도 온갖 욕이 쏟아진단다. 거기다 한 중견 기자가 지지의 뜻으로 공개한 사진에는 얼굴이 뭣같다느니 하는 똥들을 붓고들 앉았다. <br />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더럽다는 둥 못생겼다는 둥, 여보세요들 정신 좀 차리세요. 당신들이 그 모양이니까 55년만의 한파가 오고 그러는 검미다. 내가 진차 추워서 살지를 못하겠는데 말이야.  <br />
<br />
애당초 진보라는 것들이나 보수라는 것들이나 성의식에선 폭력적이고 고루한 건 매한가지였지. 처음 안 사실도 아니고 내가 놀랍지도 않다. 다만 여성주의자로서, 그렇게나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핏대 올려 싸우고 고민하고 소통해도 여성의 가슴이 지금까지도 이렇게나 삭막하고 우습게 "받아들여지고 소비된다"는 사실은 참 가슴 아프다. <br />
그래서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우린 안되나봐 한 하늘 아래 함께 살 수가 없는 사람들인가보다. 말이 통해야 뭘 하지. 나는 정말 이 나라 "어떤 남자들"(나 지금 친절하게 어떤 남자들이라 했다, 모든 남자라 안그랬다?)의 어리석음과 용렬함을 견디기가 힘들다. <br />
그러니까 너희님들은 (손 살래살래 저으며) 꺼져주십시오 저 멀리 더 멀리 더욱더 멀리.&nbsp;&nbsp;<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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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이 가고 불현듯 또 다른 마음이 찾아들었다. <br />
언제고 가장 어려운 건 내 마음이지. <br />
그 두근거림이 싫지만은 않아서, 일단 가만히 들여다보려 한다.]]></description>
<category>ichaebox</category>
<author>ichae</author>
<pubDate>Sat, 04 Feb 2012 15:42:56 +0900</pubDate>
</item>
<item>
<title>어떤</title>
<link>http://www.ichae1982.com/tts/index.php?pl=2768</link>
<description><![CDATA[ 만남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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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꿈모임. 마음이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부러 과장하거나 꾸밀 필요가 없다, 여기에서 나는. 마음이 저 원하는 만큼 착 가라앉는다. 나는 몸을 조그맣게 말고 일면식이 있거나 없는 사람들 사이에 가만히 앉았다. 마음 수면에 꽃잎처럼 떠오른 말들만 수줍게 꺼내놓는다. 나직하게 이야기하고 웃는다. 이번 모임에서는 내가 만났던 꿈 속의 나를 그렸다. 커다란 어른 한복을 입고 조숙한척 어두컴컴한 방 안에 앉아있던 열살 남짓의 나, 사랑스럽고 인자한 두 현자들(어쩌면 미래의 나일지도 모르는). 꿈 속에서 만난 어린 나는 내가 내 안의 아이와 대면했음을 혹은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부정하고 싶었다. 다 자란 척 곧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싶었지. 눈을 마주치면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지금도. 애틋하다고 안쓰럽다고 떠오를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토닥여준다. <br />
그리고 내게 두 현자가 비밀스럽게 건네준 두 마디- 내 생의 비밀은 그게 전부라는 걸 믿을 수밖에. 얼마나 좋았던지, 그저 나인채로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지난 밤은 몸과 마음이 순해져 잠들었다.<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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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를 만났다. 연말이라고 새해라고 설날이라고 핑계삼아 아무렇지 않은 척 전화를 해볼까 몇번이고 그랬다. 그런데 그러면 안될 거 같아서, 어렵게 고개를 저었을 선배의 마음을 내가 무지르는 것같아서 그럼 그게 또 상처가 될까봐서 전화를 할 수가 없었는데- <br />
이렇게 마주치니 전화 한 통 안하고 반가운 척하는 것 같아 온통 면구스럽다. 그 민망함을 감추려 목소리만 높아지는데 돌아서서는 눈물을 쏟고 만다. 모지락스러운 년, 내가 누굴 탓합니까. <br />
<br />
.<br />
내 안으로 한없이 스며들어 나로 머무는 시간들이 나를 평화롭게 한다.<br />
더욱 혼자이도록, <br />
이야기가 나에게로, 이야기가 나에게로.]]></description>
<category>ichaebox</category>
<author>ichae</author>
<pubDate>Thu, 26 Jan 2012 22:00:4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명절 뒤끝</title>
<link>http://www.ichae1982.com/tts/index.php?pl=2767</link>
<description><![CDATA[ .<br />
명절이면 부모 집에 가야한다. <br />
간다도 아니고 가고 싶다도 아닌, 가야한다. <br />
사실이 그렇다. <br />
누군가는 부모님이 보고싶지 않으냐 하고, 누군가는 엄마 밥 먹으니 좋지 않냐 하는데 나는 대개 시큰둥하다. <br />
부모님이 보고싶은가. 글쎄… 보고 싶어야 하나. <br />
엄마 밥 먹는 거야 좋지만 불편한 잠자리, 어색한 대면 등등과 셈하면 마 치아라, 이런 심정.<br />
큰집이라 친척들이 몰려와서 시끄럽고 시끄럽고 시끄럽고… 게다가 오가는 길엔 그 인간도 봐야하고. 불행해지라는 내 기도와는 상관없이 그 인간은 갈수록 얼굴에 기름기가 돈다. 참 인생 불공평하지. <br />
여튼 이래저래 별 핑계를 대가며 뻗대고 안가고 그랬는데 최근 들어서는 철이 났는지, 입 다물고 꾸역꾸역 가고 있다. 명절 스트레스 받는 종가집 맏며느리처럼 명절 한두 주 전부터 시도때도 없이 울긴 하지만 그래도 간다. 최대한 태연하게. 큰딸 보고싶다는 엄무 속이나 편하라고, 내가 해줄 수 있는 효도란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서 그거라도, 이런 마음으로. <br />
<br />
.<br />
보고싶은 마음도, 없지 않겠지.<br />
보고싶은 마음 그 이전에 너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먼저 올라와서 선뜻 보고싶어할 수가 없는 거같다.  <br />
<br />
.<br />
명절이라고 특별히 무얼 하는 거도 아니다. 밥 같이 먹고 TV 보고 짬짬이 낮잠 자고 각자 휴대전화 쥐고 있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있고, 그게 전부다. 대화 같은 건 안한다. 어른들이 무언가 열올려 이야기를 할 때는 다른 일가친척에 관한 품평(이라기엔 너무 악의적이다만)을 하거나 자기 자랑(이라기엔 너무 볼품없으시고). 그 사이로 시집가라는 잔소리가 양념처럼 뿌려진다. 내 기준으로는 그건 딱히 대화랄 수도 없어서 방에 들어가 책이나 읽고 있자면 너는 왜 명절에 집에 와서 그러고 있느냐 한다. <br />
그러게 말이에요. 겨우 이러려고 내가 예까지 왔나 싶다니까요. 몸 고생 맘 고생은 어디다 말도 못하고 말이에요. 억울해서 원. <br />
<br />
. <br />
명절 이러는 거야 한두 해도 아니고 익숙해질법도 하다만 나는 이게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 일년에 고작해야 한두 번 얼굴 보는 사람들끼리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내지는 왜 안하는 거냐, 남자친구는 있냐, 뭐하는 사람이냐, 연봉은 얼마냐 이런 사적인 이야기들을 가족/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렴없이 나눈다는 것이. <br />
그래, 이런 얘기 아니면 무얼 하겠어 싶을 수도 있지. 그치만 그건 “정형화된” 삶의 스텝을 밟아가는 사람들한테나 그런 거다. 나는 저 첫 번째 질문부터 막히거든. 일껏 “결혼 안할 건데…”라고 하면 도대체 왜 결혼을 하지 않냐고, 내가 대역죄를 범하기라도 한 양 눈 치뜨고 호들갑을 떨어댄다. <br />
<br />
거기다 대고 내가 무슨 말을 해. 왜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거냐고 내가 되물으면 어쩔 건데. 나이 들어서 혼자 되면 추레하고, 자식도 낳아봐야 하고 어쩌고 그딴 식상한 말밖에 못할 거잖아. 유치하게 나오자면 할말 더 많은 건 내쪽이다. 그러게, 그런데 결혼하면 안그래? 결혼해서도 외롭고 추레해져, 자식 낳는다고 개벽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잖아. 금이야 옥이야 길러서 남 보기 밑지지 않게 키워놓으면 대단한 성취한 것 같고 그래? 그건 걔 인생이야, 당신 인생 아니고. 착각들 좀 하지 말자 우리. 그리고 그렇게 결혼들 하셔서 행복해 죽겠어요들? 갑자기 완벽한 어른이 된 것 같고 인생에 분홍빛 배경음악이 깔리고 그래? 안그렇잖아. 지루하고 짜증나고 버겁고 외롭고 힘들고 그렇잖아. 생이 원래 그런 거니까, 결혼한다고 안그렇게 되는 게 아닌 것처럼 결혼안한다고 꼭 그렇게 되는 것만도 아니야. 결혼을 하든 안하든 내가 내 생을 어떻게 지어나가느냐가 중요한 거고 어떻게 지어가든 간에 생은 원래 지루하고 짜증나고 버겁고 외롭고 힘든 거라고! <br />
<br />
나도 이 땅에서 나고 자라서 충분히 알고 있다. 비혼에 대한 사람들의 고루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만큼이나 부박한 현실을. 어떤 현실들은 너무 생생해서 두렵기도 하고 멈칫하게도 되고 그런다. 나도 그런 두려움들과 멈칫거림에 대해 나누고 싶고, 어떤 대목에선 조언을 구하고 싶기도 하다. 나는 충분히 진지해질 용의가 있다. 그건 내 생의 중요한 화두들이니까. 그런데 대화를 하자면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그런 걸 궁금해하고 귀기울여주어야 하잖아. 내 이야기는 들어볼 것도 없이 결혼하라고, 결혼하라고 2절, 3절을 하고 저들끼리 난리부르스를 추고 앉아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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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
그런데 나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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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도 안했잖아. 당신들한테 결혼하라고 하지 말라고도 말한 적 없어. 결혼했다고 엄청난 삶의 무언가를 놓친 것처럼 요란 떨지 않았어. 그 멍청한 짓을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말한 적 없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갔다고 해서 비난하지도, 가엾어하지도 않아. 각자의 생이니까. 누구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 이 길을 가면 저 길을 가지 못하지. 그냥 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선택일 뿐이야. 나한테 결혼은 그 정도의 의미인데. 결혼이 생의 중차대한 이슈인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되잖아. 도대체 왜 ‘남’이 결혼하지 않겠다는데 이렇게도 할 말 많은 사람들이 많은 거냐구. <br />
결혼하기 전까진 (부모 외에) 정식 보호자는 없는 거란 말에는 내 참 할 말을 잃었다. <br />
<br />
. <br />
말이 나온 김에 (나 좀 쌓였으니까)<br />
결혼뿐이야? 나도 당신들 생에서 마음에 안드는 거 많아.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조차 깨치지 못해 무슨 말이든 하면 결국 버럭질로 끝나고, 분명 하는 저는 농담인데 듣는 사람은 짜증나는 희한한 어법으로 말 받아주는 자식도 하나 없는 못난 아비, 그런 아비의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수십년째 겪으면서도 “그래도 좋은 아빠”라고 자기최면걸 듯 강조/강요하는 가엾은 어미… (다른 사람들은 말을 말자) 당신들이 좀 추레해보이고 남 보기엔 그저 그런 평범한 부모라도 나는 그런 당신들이 최고인 줄 알았고, 더 돈 잘 버는 아빠가 되어달라고  더 교양있는 엄마가 되어달라고 바란 적 없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당신들이 나에게 좀더 귀기울여주길 바랐다. 내가 바라보는 것을 당신들도 흥미있게 일별해주길 바랐다. 그뿐이었다. 그뿐인데 그게 안되서, 그게 도대체 왜 안될까 날 낳고 기른 어미아비라도 모를수 있지 내 마음 같은 거.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럼 궁금해할 수는 있잖아, 들어줄 순 있잖아. 왜 그거도 못하겠다는 건지. 내가 한마디하면 당신들은 열마디하고 그 열마디가 어렵사리 꺼낸 이 한마디조차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어 생을 나누겠어. <br />
나도 노력안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하면 내 삶의 방식을, 내 지향을 최대한 거부감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 이렇게도 말해보고 저렇게도 말해봐.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건 그건 아니라는 거야. 내가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 거래. 그래 나 어리고 어설퍼. 부족한 것투성이지, 못나고. 그런데 나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을 왜 할까, 저 사람은 무슨 마음으로 저러는 걸까 그런 거 생각할 만큼은 컸어. 그 사람이 내가 아끼고 가까이 두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br />
가족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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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 />
그렇게 울며불며 발을 질질 끌며 갔어도 좀 잘해보겠다 애를 쓰고 있건만 (이번 설의 클라이막스는 아마도 이 대목일텐데)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다가 동생 애인이 의사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친척이라는 자는 집안에 의사가 들어온다고 요란을 떨고 부모도 싫은 기색이 아니고 그러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내가 이런 인간들이랑 무얼 한다고-라는 절망이, <br />
새삼스레. 이래서-<br />
우리는 안되는 거야 마음 닫는다고 생의 사소한 것들을 나누지 않는다고 나만 탓하지마. 내 탓이 아니란 말 아니고 내 탓 당신들 탓 반반이라는 거야. 내가 이 역겨운 지루함을 감내하듯 당신들도 내 냉정함을 견뎌줘 그래야 공평한 것 같다 적어도.<br />
 <br />
.<br />
이렇게 쏟아내는 건 예서뿐이고<br />
정작 그들 앞에선 나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으로 멀뚱히 있었을 뿐이다. 수동적 공격이나 일삼았지. 이를테면 밤마실 가는 길에 화장한 나를 보고 예쁘다고 맨날 화장하고 다니란 말에, 화장 잘하고 다닌다고 중얼거리고. 머플러 두르고 다니면 따뜻하단 말에는 어차피 실내에 있고 오가는 길엔 차를 타니 안했다 무뚝뚝하게 답한다. 그저 고맙습니다, 그럴게요 하면 될걸. 그게 곧 죽어도 안되는 거다. <br />
정작 으르렁댔어야 할 말과 상대는 따로 있었는데. 이번 설의 최악의 말은 "총각이냐"는 엄무의 말. 이 말을 듣고는 혼이 절반쯤 나간 것 같다. 어이 상실의 순간을 생생히 체험했달까. 무슨 말인가 3초쯤 어리둥절했다니까. <br />
<br />
그 결과 만신창이가 되어 서울로 돌아왔고 그런 나를 가엾이 여긴 애인은 빕스의 만찬을 베풀었으나 나는 소화불량에 걸려 끙끙거렸다는 그런 웃픈 이야기. <br />
<br />
<br />
아 이걸로 명절 뒤끝도 좀 끝할란다. <br />
어떻게, 곱씹어 쏟아내는 거도 버겁다. 한 친구는 제대로 응수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나는 사실 그거 할 용기도, 성의도 없다. 파이트백을 하기엔 내가 덜 단단하다 아직. 겉만 딱딱해지지 말고 속이 단단하게 여물어야 할텐데 그게 잘 안된다 특히 가족들에겐. 좌우지간에, 욕봤다.]]></description>
<category>ichaebox</category>
<author>ichae</author>
<pubDate>Wed, 25 Jan 2012 23:41:31 +0900</pubDate>
</item>
<item>
<title>기적</title>
<link>http://www.ichae1982.com/tts/index.php?pl=2766</link>
<description><![CDATA[ . <br />
주말에 대외 일정이 너무 많았나, 월요일부터 그묘일의 몸과 마음. <br />
그묘일의 마음이야 탓할 바 없으나 그묘일의 몸은 좀 심했다. <br />
이제 겨우 파릇파릇 서른하나 먹어놓고, 얼마나 더 고이 모셔야 하나<br />
춥고 춥고 추운 겨울이라 그런 것이라 하자 킁. <br />
<br />
.<br />
서른 한번째 생일 기념으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br />
올해 불온한 기적을 모의하고 있는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제목이지 않은가. <br />
나의 기적 또한 진짜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근거림을 안고 영화 관람- <br />
<br />
영화는 예상대로 소박하고 담담했다. <br />
아이들이 물에 젖은 조약돌처럼 반짝일 때마다 다만 조용히 미소지었다. <br />
어쩜 아이들은 그렇게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가. 도대체가, 악마적이다. 한때 우리도 모두 그런 존재들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더더욱. <br />
의젓한 코이치가 모험을 무사히 마치고 기차길을 혼자 걷는 등이라든가, 동생이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는 것이 샘나면서도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거라든가- <br />
류노스케는 몇 살인지 모르나 다행히도 빛나게 웃는 방법을 잊어먹지 않고 있었다. 존재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웃고 뛸 줄 아는 생명체다!! 저런 아이도 나이를 먹고 시간이 가면 적당히 냉소적이고 적당히 똑똑한 척하는 어른이 되려나. 아주 어린 시절조차도 저렇게 웃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나 같은 사람이 누굴 안타까워하고 있나. <br />
 <br />
친구들과 조잘거리고 등하굣길을 있는 힘껏 뛰어다니며, 나보다 더 예쁜 친구를 보고 실망하고 좌절하며, 반려동물을 잃어가며, 낯선 곳으로의 모험을 꿈꾸고 실행하기도 하며- <br />
아이들은 자란다. <br />
<br />
.<br />
입맛처럼 눈도 귀도 너무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져서일까, <br />
실은 이런 부류의 영화는 얼마간 지루하다. <br />
감독의 다른 작품 <아무도 모른다>를 보면서도 그랬다.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의 생존기-“라는 설명 때문에 나는 오래도록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감당을 못할 것 같았다. 맘껏 울고 싶은 어느 날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마음먹고 영화를 재생시켰지만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못했다. 아이들의 생은 너무도 부당하고 지독했지만 마음이 답답할 뿐 슬퍼지진 않았다. 아무래도 감독은 그들을 연민하거나 동정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br />
“대중적으로” 써먹으려면 얼마든지 자극적일 수도 있는 이런 소재를 이렇게 그려낼 수도 있구나, 아이들을 무턱대고 불쌍하다거나 가엾게 느끼지 않고 이렇게 가만히 보게할 수도 있는 거구나. (심지어 아이들이 저러고 있는데 군데군데 졸리기까지!)<br />
우려와 기대대로 이 영화도 비슷하게 담담했다. 하다못해 화산 폭발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상이 늘 극적인 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니까. 성장이 엄청난 사건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듯. <br />
그 담담함이, 좋았다. 거창하진 않지만 공기 좋고 평화로운 산자락에 잠깐 머물렀다 온 것처럼. <br />
함께 영화를 본 친구는 “가루칸떡 같은 영화”라 평했는데 나는 그 표현이 정말이지 너무도 아름답고 명징해서 몇 번이고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다. 말하자면 밍밍하달까, 맛이 없는 맛이랄까, 속에 그 흔한 사쿠라 같은 핑크빛 장식도 없고. <br />
코이치 말마따나 “아직 어린애라” 나는 이런 맛을 덥석덥석 즐기지는 못한다. 오래오래 씹어서 느껴지는 맛을 음미하는 법을 충분히 못깨친 탓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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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심심한듯 보았던 영화가 <br />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br />
깨물어주게 해맑은 둘째 류의 웃음이 자꾸 떠오른다. <br />
어른스러운 척하던 코이치의 심각한 표정도. <br />
가루칸떡도 꼭 이런 맛이겠지. <br />
먹을 땐 몰라도 자꾸 떠오르고 생각나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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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라이더가 되고 싶다는 아이의 소망에 피식 웃었는데-<br />
나도 한때 후레쉬맨이 되고 싶었다. 후레쉬맨 옐로우.<br />
내가 어렸을 때는 후레쉬맨 바이오맨 마스크맨 등이 굉장히 유행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후레쉬맨을 제일 좋아했다. 후레쉬맨이 제일 스토리도, 등장 인물도 괜찮은 것 같았다. 우주 멀리멀리 사라진 다섯 아이가 용사가 되어 돌아왔다니, 너무 극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그 아이들을 지구방위대로 키운 것은 (당연히) 지구인이 아니야, 지구를 사랑하는 외계 생명체가 있었던 것이다. (문득 그들은 도대체 왜 지구를 사랑했을까 하는 의문이. 도대체 지구의 뭐가, 어떤 점에 끌린 거야?-_-)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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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꿈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옐로우가 되고 싶었다. 예뻐서. 여자가 둘인데 둘 중에 제일 에뻐. 게다가 무기도 여의봉에 필살기는 막 리본체조 하는 동작. 핑크는 얼굴도 얼굴이지만 이상한 신발을 신고 나와 둥둥 떠다니는 게 별로. <br />
후레쉬맨 시리즈를 몇 번이고 빌려다보며 맨날 너는 5호, 나는 4호 이러며 지구 방위를 하고 놀았었던 기억. <br />
왜 후레쉬맨이 되고 싶었냐면 막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지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거든. 두려워하면서도 적에 맞서 싸우는 그 정의로운 용사들을 보며 아 나도 지구를 위해 이 한몸 기꺼이 바치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이기도 했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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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까맣게 몰랐다, 스무살쯤 더 먹고 나서 주말에 좀 놀았다고 빌빌거리는 서른한살이 되어있을 거라고는. 후레쉬맨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후레쉬별에서 엄청난 극한의 훈련도 견뎠거든. 가엾게도. 그들은 도대체 해준 것도 없는 지구를 왜 지키러 온 건가. 현대판 사노비인가(망상). 군데군데 엄마아빠를 찾고 싶어하는 후레쉬맨들의 에피소드가 짠하게 그려졌던 기억도 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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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후레쉬맨을 검색해봤더니 아니 이런, 나와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워너비 후레쉬맨이 이리도 많은 것이었나. 4호(사라)는 지금 보니 그냥 장덕 닮은 일본 언니. 그러고 보니 나는 우리나라 연예인 중에서도 장덕을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언니가 자살했을 때 사정도 모르면서 무지 안타까워했던 것도. 아 추억은 방울방울, 애수 돋네.]]></description>
<category>ichaebox</category>
<author>ichae</author>
<pubDate>Thu, 19 Jan 2012 22:13:2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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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소소한,</title>
<link>http://www.ichae1982.com/tts/index.php?pl=2765</link>
<description><![CDATA[ .<br />
암막커튼을 달았더니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br />
머리맡 찬기가 한결 가셨고-<br />
햇살이 쨍하게 들어 눈이 부셔서라도 늦잠을 못잤는데 오늘은 11시까지 세상 모르고 잤다. <br />
낮에도 한밤처럼 있을 수 있다.<br />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나는 해가 뜨건 말건 낮이 되고 싶지 않을 때 유용한 아이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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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품 간식을 끊겠다는 결심을 하고부터 얄궂게도 과자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한 봉지씩 열심히 뜯어먹고 있다. 최근 다시 사랑에 빠진 것은 계란과자. 나는 빠다코코낫이라든가 콘칩이라든가 하는 올드 아이템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한동안 외면했던 계란과자가 다시 내 과자 찬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br />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좋다. 어느 날에는 딸기 한 줌과 먹기 시작했는데 과자를 한자리에서 두 봉지나 먹어치웠다. 딸기와 너무 잘 어울려.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귤과 먹고 있는데 세상에, 귤과도 너무 잘 어울린다! <br />
어떤 맛과도 무난하게 잘 어울리는 계란과자의 미덕에 새삼 감탄하는 새벽.<br />
버터링과 바나나의 조합도 괜찮더라는(먼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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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과자값 왜 이렇게 올랐나. <br />
작은 봉지 두 개씩 든 계란과자 한 상자가 700원, 1000원이었던 거 같은데 이제 작은 한 봉지가 1000원이다. 누구 입에 부치라고, 작은 한 봉지로는 입에 기별도 안간다. <br />
과자값으로 물가 인상의 무서움을 덤으로 깨닫고 있는 요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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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피부과를 다녀오는 길에는 햇살이 참 좋다. <br />
차 안에 있으니 이른 봄날이라 해도 믿겠다. <br />
그래, 겨울이 오고야 만 것처럼 봄도 오는 거라니까. <br />
어제는 그렇게 날이 꾸무룩하더니 오늘은 해가 이렇게 쬔다. 어제는 몰랐지, 오늘 날이 이렇게 화창할 거라고.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고 어제 이랬던 내가 오늘 저렇다. 내가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어젠 이랬는데 왜 오늘 저런 거냐고 따지거나 화낼 필요도 없다. 변해가는 것이 당연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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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br />
사는 건 참 재미있는 놀이구나, <br />
또 하나 깨친다. <br />
이러다 살아 생전에 도 통하겠고나. <br />
철들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만 이래서 어쩌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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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간만에(!) 신산스러워 잠을 설쳤다. 새벽 일찍 깨어 어쩔 수 없이 타로 카드를 펼친다. 나를 위한 타로는 정말이지, 오랜만이다. <br />
.. 네 잘 알겠어요. 알고 있었어요 실은. 그런데 좀 짖궂으시다는 거 알죠? 내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정말 그런가, 하고 시험하실 심산인가요. 이쯤하자, 나는 내게 필요한 조언으로 떠오른 카드를 마음 속 깊이 그려넣었다. <br />
출근길 버스 안에서 까무룩 졸다가 사무실에 도착해 이런저런 일을 하다보니 또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다. 처음 해보는 거도 아니잖아. 한번 해봤으니 두 번은 좀더 수월하겠지. 그러고나니 놀랍도록 평온해지는 마음. 하루밤 작정하고 단단히 앓기를 잘했다. 눈 뜨자마자 솔직하게 내 안의 끓고 있는 이 마음에 대해 털어놓기를 잘했다. 지금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말, 진심이라고요. 아시잖아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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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첫번째 꿈모임. 나는 여신의 신호라고 느껴지는 꿈들을 말하고 그렸다. 꿈을 적당히 눙치며 살아가고 싶은 시기도 있다. <br />
마음을 끓인 날 밤 나는 숱하게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br />
내 집의 화장실은 어쩐 일인지 높은 층의 투명한 창이었는데 아래로는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쫓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용변이 급해 어느 집으로 들어섰고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좀 께림칙했지만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고 그리고 또 다른 화장실로.. <br />
명확하게 기억이 나고 쓰면서 떠올리니 다른 사람의 화장실로 뛰어드는 것은 어떤 소설의 줄거리이기도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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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줄여서 소행주) 비혼여성 간담회'에 다녀왔다. <br />
(<a h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1001150813744&p=sisain" target="_blank">소행주에 관한 시사인 장일호 기자의 기사</a>를 참고하세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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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이라는 표현보다 독립생활자라고 부르시더라. 소행주 2호 주택까지가 건설되었고 3호 주택이 지어지고 있는 중이란다. 소행주 마을 파티 기획에 참여했던 이산이 비혼 여성들을 위한 소행주 주택도 가능하지 않을까 꿈꾸며 만든 자리였다. 소행주 박흥섭 공동대표와 소행주 기획코디이자 1호 거주자이기도 한 박종숙님이 참석해 공동주택 짓기에 관한 이야기를 친절하게 나누어주셨다. <br />
오늘은 정말 첫 모임이어서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열망과 관심을 나눈 정도였다.<br />
사실 이런 이야기는 친구들과 틈만 나면 내내 해오던 것이라(입으로 지어올린 건물만도 수십 채) 나로서는 집짓기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분들을 만난 것이 기뻤고, 정말 장기적으로 준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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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능성과 붉은 꿈의 겹겹이야 숱하게 말했던 것이니 접어두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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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큰 돈을 모아야 하고 집이라는 가장 내밀한 취향의 집합체를 함께 조율해나가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나와 친구들은 너무 젊고 자유로운 영혼들이라 장기적으로 5년, 10년의 고정적인 계획을 잡고 공동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는 것 정도가 난관이라 하겠다.<br />
나만 해도 춤여행을 갈 거고, 어떤 공동체에서 1년 정도 보내고 싶은 계획이 추가되었다. 망원동이 좋은 것만큼 서울의 번잡함과 탁한 공기가 싫어서 파주나 경기도로 뜨고 싶은 마음도 있다. <br />
게다가 타인과 공간을 일정 부분 공유하는 공동주택이라니. 갈수록 고양이 기질이 강해지는(그리고 그걸 감추거나 억누를 마음이 전혀 없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있다. 냉철하게 말하자면 나는 타인과 공간과 생을 공유하기에는 깜냥도 내공도 부족한 사람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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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형태는 빌라의 위아래층으로 살거나 2층짜리 집을 지어 한 층씩 나누어 사는 것이었다. <br />
간담회에 다녀와서 하우스 메이트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꼭 소행주의 공동주택 형태가 아니라도 내가 원하는 방식의 주택을 소행주와 함께 지을 수도 있는 거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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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한편으로 가슴이 뛰는 것은 요즘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생의 네트워크, 서로 기대어 살기 등등이 조금씩 더 중요한 삶의 아젠다가 되어가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겨우 삼십에도 이렇게 생이 무거운 걸 알고 겁이 퍼뜩 나는데 마흔, 쉰이 되면 오죽할까. 그때가 되면 서로 지척에서 삶을 공유하고 서로 지원하는 공동주택이 필요해지지 않을까. 지금이야 사실 아쉬울 게 없는 게 당연하지, 몸 건강하지 친구들도 여럿 한 동네에 살고 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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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같아선 수십 억이 내게 있어서 딱 그런 주택을 짓고 상가 공간은 언니네트워크나 생기달풀 같은 곳에 내어주고, 친구들과 한 집씩 차지하고 살고 나는 1층에 작은 빙수점 같은 것을 내어 사시사철 빙수나 갈아먹고 심심하면 건물 소식지나 만들며 살았음 싶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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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지금 당장엔 여러 모로 어렵겠지만 마흔, 쉰쯤을 두고 기나긴 꿈을 꾸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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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ichae</author>
<pubDate>Sun, 15 Jan 2012 02:19:4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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