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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포르노'를 말하는가?
ichae-fem | 05/01/23 00:56


'창녀(pornoi)'와 '그림(grapos)'이라는 희랍어를 어원으로 하는 포르노그라피의 정의는 대개 비슷비슷한데 <포르노그라피의 발명: 외설성과 현대성의 기원>의 저자 헌트는 '성적 감정을 일으킬 목적으로 성기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정의하고, 남한 법에서는 포르노를 '인간의 육체 혹은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 서술한 것으로 성적인 자극과 만족을 위해 이용되는 성표현물'로 정의한다.
나 역시 포르노를 '노골적인 성애물'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포르노에 관한 나의 생각부터 밝히자면 나는 포르노를 반대하거나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아니 페미니스트가 어찌 그런 말을?'한다면 당신은 페미니즘에 편견을 가졌거나 페미니즘을 잘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다. 페미니스트들 중에도 포르노를 즐기고 포르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로즈마리 통의 구분에 따른) 급진적-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들의 경우 포르노를 실컷 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페미니스트들이 (현재의) 포르노를 찬성한다'거나 '포르노는 옳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억제했던 성적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즐거움을 주는 성적 환상"들을 위해 포르노를 보라고 한 급진적-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들조차 포르노가 "성적 약탈자, 여성이라는 '먹이감'을 위해서 배회하는 동물과 같은 남성에 대한 영상들을 여성들에게 잔뜩 공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내가 아는 한(아는 것이 많지않지만 -.-;;) 거의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포르노를 열렬히 비판한다. 포르노가 여성을 물신화, 대상화시킴으로써 성차별과 성폭력을 정당화하고, 성에 관한 수만가지 악랄한 편견들-이를테면 '여자는 강간당하길 원한다'는 따위의-을 퍼뜨리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런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포르노그라피의 컨벤션인 훔쳐보기(peeping Tom)는 관객(곧 남성으로 전제되는)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안전한 상황에서 상대를 볼 수 있는 권력과 즐거움을 제공하며, 줄곧 화면을 채우는 여성들의 파편화된 육체는 '가슴=여자' '질=여자' 따위의 편견을 관객(역시 남성)에게 반복적으로 인식시킨다.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를 가진 여성이 (남성 관객/제작자의 억지스런 편견과 욕망에 의해) "날 가져보라"고 유혹의 눈빛을 보내면 남자 배우(그리고 관객)는 마지못해/무력하게 그 유혹에 응답한다.

이때 관객들은 '여자는 언제나 (나를) 원한다'거나 '여자는 강간당하길 즐긴다' '여자는 남자의 성적 욕망을 위해 존재한다'는 등의 가부장적 메시지를 재확인한다.

그 결과 포르노는 강간을 비롯한 수많은 폭력을 이상적 성행위나 남자다운 행동으로 그려낸다(내 생각에 이것이 포르노의 가장 큰 죄악인데, 폭력적이어야 에로틱한가? 폭력없는 성은 에로틱할 수 없나?). 어릴 때부터 경쟁적으로(포르노나 성에 대해 적극적이거나 해박하지 않으면 이른바 '찌질이' 취급을 받으므로) 포르노를 통해 성지식을 습득하는 남성들은 이러한 편견과 오해들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자신의 지식을 실천해보고자 한다. 그야말로 "포르노는 이론, 강간은 실천"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한마디로 포르노는, 나쁘다. 그러면 포르노를 없애면 될까? 포르노를 금지한다면 강간은 줄어들고 성평등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될까?


* 참고
로즈마리 퍼트남 통 <페미니즘 사상: 종합적 접근> 2000 한신문화사
이나영 <포르노 섹슈얼리티 그리고 페미니즘> 1999 서원
아네트 쿤 <이미지의 힘: 영상과 섹슈얼리티> 1995 동문선
* 사진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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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민노씨네 06/09/08 23:57 x
제목: [PP] 포르노와 페미니즘
#. 포르노 프로젝트[PP] 네 번째 글입니다. [PP]는 박형준군과의 공동 프로젝트입니다. 다만 서로의 글쓰기에 대한 역할분담에 대한 사전 협의는 최소한에 그칩니다. 주로 저는 이론..
83년생 남자 울산 08/06/10 05:18 X
여자들만 성적인 억압을 받고 자라지 않습니다.
저는 남자지만 부친이 목회일을 하시는 분이라 기독교 특유의 생식을 위한 성 따라서 '혼전순결'의 세뇌아닌 세뇌를 받으며 자랐고 지금도 아직 경험이 전무합니다. 물론 키스도 하지 않았고요.
제가 매력이 없어서 못한것이 아니라 안한거라고 저는 주장합니다만! 아무튼 성적인 욕구를 느끼는 제가 저 스스로 용납이 안되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대학물의 세례도 받은 저라서 자연스러운 욕구일 뿐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는 하나 가슴으로는 그렇지가 못하네요.
그러니 님만 여자라서 성적인 욕구를 억압받고 자랐다고 여기시지는 마시길.. 제가 일반적인 남자들의 성향이 아닌 것이긴 하지만 저같은 유형도 어느정도 존재한다고 봅니다.
순결 끝까지 유지하렵니다. 여태 참은 게 아까워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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