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읽기 먼저 포르노를 없앤다면 포르노를 즐기는 여성들의 욕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포르노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이 "본질적으로 대상화하는 쾌감"이라고 할 때 대상화를 통한 쾌락 자체를 부정하기란 어려우며 바람직하지도 않다(그렇다면 여성들의 욕망은?) 포르노를 보는 여성들의 즐거움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그리고 왜 형성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들의 경험과 느낌을 완전히 배제하거나 그 욕망이 '가부장제에 의해 세뇌당한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단정지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포르노를 금지한다고 성폭력이 줄어들거나 없어질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강간과 성차별을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원인들은 그 외에도 얼마든지 많다.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재현은 '타자' 혹은 '차이'-즉 가부장제의 표준과의 차이, 그러니까 엄밀히 말해서 결함-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포르노라고 불리지 않는 많은 영화들과 드라마, 연예오락프로그램과 토크쇼, 심지어 뉴스에서까지 성폭력은 공공연히 등장하며 내겐 그 폭력이 포르노에서 죽어라고 보여주는 강간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모두 다 똑같으니까 포르노도 내버려두자'는 말이 결코 아니다. 비판의 핵심이 포르노의 강간과 여성의 물신화, 여타 매체의 여성 비하와 혐오를 가능케하는 구조 자체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 구조는 상당히 다층적이며 복잡하다. 그 안에는 여성을 성적 대상물로 폄하하는 가부장제도 들어있으며, 이를 보고 즐기고자 하는 남성들의 폭력적 성관념도 들어있고, 이 남성들을 고객으로 끊임없이 포르노를 생산해내는 자본주의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가하면 강간과 여성혐오 살해를 부추기는 갖가지 매체(포르노를 포함한)에 대해 적당히 모른 척하는 가부장제적 국가의 힘도 작용할 것이고, 여성을 남성의 보조물로 인식시킨 다음 데려다 쓰고싶을 때 고용하고 버리고 싶을 때 간편하게 해고시키는(정리해고 1순위가 맞벌이하는 기혼 여성인 것에 비추어볼 때) 자본주의의 음모까지도 추측해볼 수 있다.
이때 포르노를 두고 찬반을 가르는 이분법적 도식은 이 많은 문제들을 가릴 뿐만 아니라, 반 포르노
페미니즘 진영을 고루한 보수주의자들 편에 밀어넣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그러므로 포르노를 반대하거나 금지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포르노를 들여다보고 알고 이해하고 분석하여 개입하고 궁극적으로는 해체하는 전략"(이나영 <포르노 섹슈얼리티 그리고 페미니즘> 1999 서원)을 취해야한다. 여자들이 포르노를 사이에 두고 까뒤집고 볶고 찔러대는 푸닥거리를 한바탕 해야한다. "포르노에 대한 개입과 해체"를 통한 "전복의 정치학"은 그제서야 가능해질 것이다.
내가 '이채, 포르노를 말하다'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포르노는 남성의 소유물이니 여자는 모른 척하거나 비판하거나 조용히 즐기거나 셋 중의 하나였다. 포르노가 만들어내는 성관념이 이 사회의 여남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포르노에 관한 논의에서 배제당했다. 사회는 여성들의 비판을 '뚱뚱하고 못생긴 게 억울한 페미년들의 악다구니' 아니면 '성욕도 없는 목석들이 뭣도 모르고 하는 얘기'쯤으로 (아주 단편적으로, 정확히 말하면 무식하게 -.-;;) 받아들였다.
나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여성들의 활발한 개입과 전복이 이른바 '대안적' 포르노(나의 멘토 김재희 언니는 포르노의 여성형 명사 '포르나'라고 칭하는)를 가능케 하리라고 생각한다(또한 그러기를 바란다).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 어떤 방식을 취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폭력적이지 않아도 성은 에로틱할 수 있으며 자극적일 수 있다. 오히려 폭력을 배제하고 남근 중심적인 고정관념을 버릴 때 우리의 욕망과 성은 더욱 풍요로워질(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것이다.
그런데 포르노가 그렇게 변한다면 아무도 그것을 '포르노'라고 부르지 않을까?